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나는 어떻게 <하얀거탑>에 열광하게 되었는가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 가운데 <하얀거탑> 마니아가 많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흰 가운을 입고 수술 장면이 나온다고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하얀거탑>이 “정치 드라마인 동시에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는 내용이라 열광하게 됐다”고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에 TV 드라마를 접할 시간이 없던 나는 우연찮게 이 드라마를 한 번 본 이후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럴 수가. <하얀거탑>은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섬세하게 조직의 ‘진짜’ 생리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만큼 섬뜩한 <하얀거탑>의 정치들

 

대학병원의 외과 과장 자리를 두고 벌이는 이전투구는 한 회사의 조직원으로 살아가는 샐러리맨에게는 차라리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런 암투를 수십 년간 벌여야만 한 조직의 우두머리로 우뚝설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준혁(김명민)이 장인어른의 도움을 받고 장인어른은 또 대학 의대 동문회장과 연결되고, 병원 부원장의 힘까지 등에 업는 연결고리는 자연스럽다. 또 장준혁의 아내까지 로비에 나서는 모습 역시 안쓰럽기보다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외과 과장 자리를 물려주고 다른 병원 원장자리를 탐내는 이주완(이정길)과 외과학회 회장과의 결탁은 충분한 개연성을 담고 있고 있다. 이에 반해 노민국(차인표) 쪽은 어떤가.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그가 비현실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을 정도다.

또 어느 선거판에나 등장하는 ‘캐스팅보트’도 그럴듯하다. 이쪽에도 붙고 저쪽에도 붙어 이권을 뜯어내는 모습은 섬뜩하게 현실적이다. 돈이 등장하고, 자리를 보장하고, 줄을 세우는, 선거판의 전형적인 모습이 부담스럽다고? 이런 풍경이 비단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지자체장 선거에만 펼쳐진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순진무구한 분이지 않을까. 물론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에 이 정도 로비가 이뤄지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은 들지만, 우리 세대가 속한 어느 조직이든 어느 정도의 직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비와 암투가 필요하다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도 혹은 간접적인 정보로도 충분히 체득할 수 있는 ‘상식’이다. 오히려 <하얀거탑>에서 흑색선전과 마타도어가 난무하지 않은 것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당사자들의 사생활에서부터 업무 경력에 이르기까지 온갖 ‘뒷담화’가 쏟아져 나오는 게 조직에서의 선거판이라고 해도 결코 오버가 아닐 것이다.

 

학연, 지연으로 맺어지고 줄을 잘 서야 출세하는 것이 슬프지만,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현실이다. 오너와 혹은 막강한 세력군과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지 못한 사람은 ‘육두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골’ ‘진골’ 반열에 오르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샐러리맨들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조직 내 누가 ‘끗발’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하고 이러한 권력구도 하에서 줄서기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아니면 집에 돈이 많던가!). 또 하나.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줄서기를 싫어하는 직장인조차도 권력 상층부에서는 알아서 줄을 세운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은 어느 학교 출신이니깐 상대 편, 이 사람은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부서에서 누구랑 같이 일했으니깐 우리 편’이라는 식으로 알아서 편 가르기를 끝낸다. 왜? 부동표가 누구를 포섭해야 할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이렇게까지 주장해버리고 나니 상당히 서글퍼진다. 청렴결백하고 눈치 안 보고 묵묵히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은 도태돼야만 하는 게 현실인 것인가. 아주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지만, 기억해보자. 장준혁의 외과 과장 자리가 아슬아슬했던 건 결코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와 같은 일이 비단 조직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업가,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 조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여기서 자유로울까? 정도의 차이겠지만 사업오더를 따내기 위해서 혹은 일거리를 위해서 로비와 접대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필수가 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한 지인은 주장했다. 우리나라에 룸싸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이 이토록 발전한 것은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 때문이라고. 누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은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할 테니. 특히 이러한 일을 ‘맨정신’으로 하기에는 부끄러울 테니. 은밀하게 술잔을 권하며 이야기하는 곳이 절실했을 테니.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말이었다. 처세술과 관련된 책들이 스테디셀러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리라.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직장인들은 고민하고, 눈치보고, 술잔을 기울인다. 젊었을 때의 양심과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혹은 빠른 성공을 위해.

 

오늘날의 직장인들에게 <하얀거탑>은 아주 재밌는 드라마다. 그저 ‘뒷담화’로만 오고가던 얘기들이 화면으로 생생히 전개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모른다. ‘미디어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잠시 인용한다면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는 그래서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현상을 비춰주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끄럽고도 서글프다. 나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서. 우리 샐러리맨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하얀거탑>은, 참 슬픈 드라마이기도 한 것이다.

 

최세헌/ 8년차 일간지 사회부 기자

Posted by 라면한그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