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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영화를 본 男과女들은 속으로 주저하고 망설이다 결국 사랑을 놓쳤던 기억을 한번쯤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옆 선술집에서 조용히 소주 한잔 기울이며 자신의 못이룬 사랑을 곰씹을수도 있겠다 싶다.

적극적인 애정표현이 미덕인 요즘의 연애풍경에서 불과 10여년 남짓 전까지도 그랬었던 '남몰래 애태우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남녀에겐 어찌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

요즘처럼 남녀 교제에 있어 무작정 '들이대기'와 지나친 '보여주기'가 당연한 대세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영화는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하다.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더 멀어지고 어색해지면서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겁을 내, 소극적이 되는 A형식 사랑법이 '사랑을 놓치다'가 아닌가 싶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대학 조정 선수 우재(설경구 역)는 사귄지 200여일 되는 여자 친구로부터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당한다.처음엔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니 이내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이미 돌아선 그녀. 애꿎은 공중전화 부스만 때려부시며 원망하면서도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위로하면서 여자친구를 욕하는 친구에게 욕하지 말라고 또 소릴 지른다.

그런 우재 옆에서 마음편한 친구인척 하며 마음속 짝사랑을 숨기고 있는 연수(송윤아 역)는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우재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지만 한번도 고백하지 못한다. 헤어진 여자를 잊기 위해 군대에 간 우재에게 작심하고 면회에 나선 연수는 남얘기하듯 눈치없는 우재에게 끝끝내 표현못하고 저녁 막차를 타고 돌아온다.

둘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는 듯 하더니 10년이 흐른 후 다시 이어진다. 우재는 고등학교 조정코치가 되어있고 연수는 수의사다. 연수는 이미 돌아온 싱글이 돼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감정의 교감은 이제부터. 둘은 조심조심 차츰차츰 스며들 듯 가까워진다. 우재가 자고 가는데 동의한 연수는 다음날 아침 이제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됨을 감지 한듯 달뜬 표정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하지만 우재는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오고 '미안하다'고 애기한다.

사랑에 있어 '미안하다'는 단어는 이별과 맞닿아 있는 표현이다. 10년이 지났건만 이들의 사랑은 여전히 10년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양새다.

영화는 애절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주인공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별도 없다. 그저 일상의 한 풍경처럼 조용하게 흘려보낸다. 긴장감없는 사랑이야기는 시종일관 큰 울림이 없지만 마음속을 파고드는 울림이 있다.



일식집 간장처럼 심심한 사랑이야기에서 유쾌한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은 오히려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과정속에서 우러난다. 변기 내리는 물에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으면서 만남의 설레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나 잠시 맡겨진 강아지와 대화아닌 대화를 나누는 설경구의 에피소드, 그리고 연수의 어머니 이휘향과 장항선의 황혼의 로맨스는 뜨뜻 미지근한 주인공의 러브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설경구는 찍는 영화마다 눈물을 흘리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자의 눈물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사랑에 아파하는 눈물이다. 이지적이고 똑부러져 보이는 세련된 이미지의 송윤아는 목늘어난 티셔츠에 퍼진 긴 치마를 입고 더할나위 없이 차분하고 수더분한 모습으로 '연수化하는데 성공했다.

스크린을 통해 주인공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무더운 여름의 기운은 연수의 고향인 양어장과 우재의 터전인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시원스런 물살의 청량감으로 상쇄되고도 남는다.

'마파도'란 엽기 코미디물로 데뷔작에서 대박을 터뜨린 추창민 감독이 '광복절 특사'의 스태프로 활동할 당시부터 만들고 싶어했던 자전적 경험의 영화 '사랑을 놓치다'(시네마서비스)는 '느리게 사랑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18세 영화의 홍수속에 15세 관람가라 웬지 반갑다. 26일 개봉

 

서랍속에서 아스라히 기억속으로 이젠 희미해져가는 첫사랑의 편린을 다시금 꺼내어 보게 하는.

하지만 희미한 미소와 함께 이젠 다시 서랍속에 넣어두어야 하는 조각들...

 

p.s : 설경구 역도산 이후로 불어버린 몸은 어쩔수 없구나 ㅎㅎㅎ(조정선수라면 어울리긴 하다)

Posted by 라면한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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