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1
지난 5일 오후. 제법 큰 포털 회사인 Y사 화장실.
"완전히 쌍끌이야…, 이러다가 쓸만한 경력직은 씨도 남아나지 않겠는 걸."
"그러게 말이야, O과장도 N사로 간다면서…."
"에이, 나도 이참에 함 가볼까?"
이틀 뒤, N사 사무실은 2만 개 '인간 부품의 스펙'으로 가득 찼다.
# 장면2
지난 3일 오후. Q사 사무실.
P모 차장은 두어 달 전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잘 한 일"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쓸어 내렸다. 이날 Q사의 K사 인수가 확정된 것. P씨는 두어 달 전 K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이를 정중하게 물리쳤었다.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달다'고 당시 이 제의를 받아들였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한 것.
지금은 '점령군'의 위치에 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간택을 기다리는 '피점령지 속의 배신자 운명'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 장면3
같은 날 오후 K사 사무실.
이 회사 임원 C씨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A사 오너가 모든 지분을 외국계 T사에 넘기는 바람에 A사 Y사장의 직계였던 그는 A사를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K사로 자리를 옮겼다.
또 A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주군'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다. 불과 두세 달 전이다. 그런데 사내 핵심임원인 줄 알았던 자신도 모르게 K사는 Q사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것은 오로지 '주군'에 충성한 대가였다.
또다시 새로운 '주군'을 찾아 갈 것이냐, 아니면 이제 스스로 '주군'이 될 것이냐, 그의 고민 속에 애꿎은 담배만 타고 있었다.
◆'스펙'으로 불리는 IT 인력
'스펙'으로 정리된 인력들이 부초(浮草)처럼 IT 인력 시장을 떠돌고 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구직자 10명 중 6명이 갈 곳과 오라는 곳을 찾아 '스펙'을 다듬으며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인력의 부초화(浮草化)는 '자의반타의반'이지만, 특히 IT업계에 심하다.
"이직 횟수가 스펙을 높인다"는 선진적(?) 사고가 가장 팽배한 곳이 이 분야인데다, 시장 자체가 끝없이 이직을 독려할 만큼 부침이 심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의 명멸과 흥망 속에 '이직의 스펙'도 화려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20세기말 한국 사회를 흥청거리게 했던 '벤처 신화'가 일부 정리되고, 거품이 걷힌 뒤, 지속 가능하면서도 우량한 기업에 대한 변별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이들 기업이 다시금 '화려한 스펙'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벤처 부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연기금은 물론이고 국내외 투자자의 관심까지도 이 곳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에 휩쓸리는 IT 인력
부초화된 인력은 필연적으로 이리저리 휩쓸리게 돼 있다.
최근 NHN의 경력 직원 채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업계가 통째로 휩쓸렸다. 130명을 추리는데 2만 명이 몰렸다. 포털 분야에서 경력채용인 만큼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닷컴 업계에 2만 명의 인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의구심이 일 정도였다. 한 기자가 "허구를 파헤치겠다"며 나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NHN의 사무실과 인사 담당자의 DB에는 선택되지 못할 운명이면서 잘 스펙화된 인력이 파도에 쓸려 온 온갖 부유물처럼 쌓였다. 인력 부초화의 쓸쓸한 풍경이다. 많은 사람이 그 속에 있었다.
그러자 다음이 반격에 나섰다. 꼭 일주일 뒤 NHN보다 규모가 큰 170명 가량의 인력 채용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를 꼭 '반격'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NHN의 채용이 단순한 인력 충원을 넘어 '바람'으로 확대되면서, 다음의 채용 또한 인력 충원이라는 현실과 함께 불가피하게 '바람'의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NHN의 최대 경쟁자인 만큼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NHN에 이처럼 대규모의 인력이 몰린 이유는 다소 역설적으로 보인다. 지난 5~6년간 부초화에 길들여졌던 IT 분야의 인력들이 이제 정주(定住)를 바라는 측면도 크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면서, 그만큼 우량한 회사를 찾아 떠도는 부초들의 궁극적인 희망은 그런 것 아닐까.
◆인력 이동의 파도는 계속된다
NHN이 크게 출렁거리게 했던, 이런 인력 이동의 파도는, 당분간 'IT 바다'를 계속해서 격랑 속으로 몰아넣을 분위기다. 그 파도에서 부유할 준비가 된 인력은 많고, 기업들 또한 지속적으로 채용을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력 채용 업체인 잡코리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 지난 1분기에 IT 업종에서 채용 공고를 낸 건수는 5만9천332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분기 3만7천747건보다 무려 57.2% 가량 많아진 것이다. 이런 추세는 15개 분야 가운데 캐릭터-애니메이션만 빼고 14개 전 분야에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추세는 2분기에도 수그러들고 있지 않다. 인력 이동 파도를 지속하게 할 유력 기업의 채용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닷컴에 많다.
게임 업계에서는 웹젠이 올해 240명을 충원한다. 작년말 기준으로 전체 직원이 480명이니 인력을 150%로 늘리는 셈. 그라비티도 190명의 인력을 새로 뽑는다(현재 460명). 또 네오위즈(100명), CJ인터넷(30명, 50명은 이미 충원) 등 유력 기업이 채용 계획을 갖고 있어, 인력이동의 파도 현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게임 업계는 업체 수가 3천 개, 개발중인 게임 수가 300~400개임에 비해, 성공적으로 게임을 발표하는 곳은 30~40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메이저 업체를 향한 인력 이동 파도 현상이 더 거셀 것으로 보인다.
◆파도가 아니어도 부유할 곳은 많다
사실 'IT 인력의 부초화'를 창조한 것은 대규모 공채가 아니다. IT 인력 시장의 경우 '신입'과 '공채'로 대별되는 과거 한국 기업의 인력 채용 트렌드를 '경력'과 '수시'로 전환시킨 진원지다. '인력 부초화'의 경험적 배경이 된다.
갈 곳과 오라는 곳은 인터넷 속에 이미 널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초화한 인력의 소용처를 늘어놓는 것은 이제 뉴스에도 끼지 못한다. 지난 1분기 90일 동안 채용사이트 잡코리아에 등록된 IT 분야 채용 건수만 무려 6만건에 달한다. 하루 600건에서 700건에 이르는 새로운 채용 공고가 이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에는 대기업 계열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 대기업 계열 SI 업체의 경우 과거에는 그룹 공채와 연동한 채용 방식이 대세였지만, 대규모 공채보다 필요에 따라 원하는 '스펙'을 갖춘 사람을 수시로 가리는 방식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이 업계의 경우 특히 대규모 충원보다 인력 풀을 유지하는 게 사업 특성에 맞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수많은 중소 벤처 IT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야말로 부유하는 IT 인력의 근거지다. 이들 업체는 '창업 → 사업 확대 → 구조조정 → 퇴출'로 이어지는 기업의 생멸 주기가 극히 짧고, 그에 따라 인력이동도 거대한 파도를 따라오는 잔물결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잦은 인력이동, 문제는 없는가
이런 인력의 부초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강하다.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또 유능한 인재의 경우 더 나은 직장으로 스카웃될 기회가 많다는 점도 좋게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최근 직장인 2천500여명을 상대로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 60%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채용포털 커리어가 1천524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렇게 형성된 구직자 10명 가운데 6명은 매일 1시간 이상씩 업무시간에 온라인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것 나타났다.
물론 이런 조사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측면을 고려해도, 직장인이면 누구나 다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처럼 보인다.
기업 측면에서 봐도 이런 현상은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근 IT잡피아란 채용 사이트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1천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55.4%는 경력 채용자에 대해 만족스러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스펙(경력)에 비해 실무능력이 떨어지고, 그러면서 과다한 연봉을 요구하며, 언제든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데다, 사내 다른 이들과의 동화도 어렵다는 이유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서 형성되는 종합적인 판단인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직원들은 "내(우리) 회사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회사는 "내(우리) 직원이다"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 장면4
16일 오후, 게임 업체 C사 사무실.
L과장은 품에 넣은 사직서를 안고 끙끙거리고 있다. C사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은 N사의 스카웃 제의를 수락키로 결정했는데, 선뜻 사표를 제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옮기면 직장 경력 7년 만에 5번째다. 특히 C사는 직전 직장의 CEO였던 M씨가 추천해준 곳. M씨는 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그동안 총애했던 L과장을 C사에 추천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 M이 다시 그를 부른 것이다.
사람을 따를 것인가, 직장을 따를 것인가, 일을 따를 것인가, 돈을 따를 것인가…
지난 5일 오후. 제법 큰 포털 회사인 Y사 화장실.
"완전히 쌍끌이야…, 이러다가 쓸만한 경력직은 씨도 남아나지 않겠는 걸."
"그러게 말이야, O과장도 N사로 간다면서…."
"에이, 나도 이참에 함 가볼까?"
이틀 뒤, N사 사무실은 2만 개 '인간 부품의 스펙'으로 가득 찼다.
# 장면2
지난 3일 오후. Q사 사무실.
P모 차장은 두어 달 전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잘 한 일"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쓸어 내렸다. 이날 Q사의 K사 인수가 확정된 것. P씨는 두어 달 전 K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이를 정중하게 물리쳤었다.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달다'고 당시 이 제의를 받아들였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한 것.
지금은 '점령군'의 위치에 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간택을 기다리는 '피점령지 속의 배신자 운명'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 장면3
같은 날 오후 K사 사무실.
이 회사 임원 C씨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A사 오너가 모든 지분을 외국계 T사에 넘기는 바람에 A사 Y사장의 직계였던 그는 A사를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K사로 자리를 옮겼다.
또 A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주군'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다. 불과 두세 달 전이다. 그런데 사내 핵심임원인 줄 알았던 자신도 모르게 K사는 Q사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것은 오로지 '주군'에 충성한 대가였다.
또다시 새로운 '주군'을 찾아 갈 것이냐, 아니면 이제 스스로 '주군'이 될 것이냐, 그의 고민 속에 애꿎은 담배만 타고 있었다.
◆'스펙'으로 불리는 IT 인력
'스펙'으로 정리된 인력들이 부초(浮草)처럼 IT 인력 시장을 떠돌고 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구직자 10명 중 6명이 갈 곳과 오라는 곳을 찾아 '스펙'을 다듬으며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이직 횟수가 스펙을 높인다"는 선진적(?) 사고가 가장 팽배한 곳이 이 분야인데다, 시장 자체가 끝없이 이직을 독려할 만큼 부침이 심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의 명멸과 흥망 속에 '이직의 스펙'도 화려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20세기말 한국 사회를 흥청거리게 했던 '벤처 신화'가 일부 정리되고, 거품이 걷힌 뒤, 지속 가능하면서도 우량한 기업에 대한 변별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이들 기업이 다시금 '화려한 스펙'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벤처 부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연기금은 물론이고 국내외 투자자의 관심까지도 이 곳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에 휩쓸리는 IT 인력
부초화된 인력은 필연적으로 이리저리 휩쓸리게 돼 있다.
최근 NHN의 경력 직원 채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업계가 통째로 휩쓸렸다. 130명을 추리는데 2만 명이 몰렸다. 포털 분야에서 경력채용인 만큼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닷컴 업계에 2만 명의 인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의구심이 일 정도였다. 한 기자가 "허구를 파헤치겠다"며 나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NHN의 사무실과 인사 담당자의 DB에는 선택되지 못할 운명이면서 잘 스펙화된 인력이 파도에 쓸려 온 온갖 부유물처럼 쌓였다. 인력 부초화의 쓸쓸한 풍경이다. 많은 사람이 그 속에 있었다.
그러자 다음이 반격에 나섰다. 꼭 일주일 뒤 NHN보다 규모가 큰 170명 가량의 인력 채용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를 꼭 '반격'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NHN의 채용이 단순한 인력 충원을 넘어 '바람'으로 확대되면서, 다음의 채용 또한 인력 충원이라는 현실과 함께 불가피하게 '바람'의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NHN의 최대 경쟁자인 만큼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NHN에 이처럼 대규모의 인력이 몰린 이유는 다소 역설적으로 보인다. 지난 5~6년간 부초화에 길들여졌던 IT 분야의 인력들이 이제 정주(定住)를 바라는 측면도 크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면서, 그만큼 우량한 회사를 찾아 떠도는 부초들의 궁극적인 희망은 그런 것 아닐까.

NHN이 크게 출렁거리게 했던, 이런 인력 이동의 파도는, 당분간 'IT 바다'를 계속해서 격랑 속으로 몰아넣을 분위기다. 그 파도에서 부유할 준비가 된 인력은 많고, 기업들 또한 지속적으로 채용을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력 채용 업체인 잡코리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 지난 1분기에 IT 업종에서 채용 공고를 낸 건수는 5만9천332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분기 3만7천747건보다 무려 57.2% 가량 많아진 것이다. 이런 추세는 15개 분야 가운데 캐릭터-애니메이션만 빼고 14개 전 분야에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추세는 2분기에도 수그러들고 있지 않다. 인력 이동 파도를 지속하게 할 유력 기업의 채용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닷컴에 많다.
게임 업계에서는 웹젠이 올해 240명을 충원한다. 작년말 기준으로 전체 직원이 480명이니 인력을 150%로 늘리는 셈. 그라비티도 190명의 인력을 새로 뽑는다(현재 460명). 또 네오위즈(100명), CJ인터넷(30명, 50명은 이미 충원) 등 유력 기업이 채용 계획을 갖고 있어, 인력이동의 파도 현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게임 업계는 업체 수가 3천 개, 개발중인 게임 수가 300~400개임에 비해, 성공적으로 게임을 발표하는 곳은 30~40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메이저 업체를 향한 인력 이동 파도 현상이 더 거셀 것으로 보인다.
◆파도가 아니어도 부유할 곳은 많다
사실 'IT 인력의 부초화'를 창조한 것은 대규모 공채가 아니다. IT 인력 시장의 경우 '신입'과 '공채'로 대별되는 과거 한국 기업의 인력 채용 트렌드를 '경력'과 '수시'로 전환시킨 진원지다. '인력 부초화'의 경험적 배경이 된다.
갈 곳과 오라는 곳은 인터넷 속에 이미 널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초화한 인력의 소용처를 늘어놓는 것은 이제 뉴스에도 끼지 못한다. 지난 1분기 90일 동안 채용사이트 잡코리아에 등록된 IT 분야 채용 건수만 무려 6만건에 달한다. 하루 600건에서 700건에 이르는 새로운 채용 공고가 이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에는 대기업 계열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 대기업 계열 SI 업체의 경우 과거에는 그룹 공채와 연동한 채용 방식이 대세였지만, 대규모 공채보다 필요에 따라 원하는 '스펙'을 갖춘 사람을 수시로 가리는 방식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이 업계의 경우 특히 대규모 충원보다 인력 풀을 유지하는 게 사업 특성에 맞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수많은 중소 벤처 IT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야말로 부유하는 IT 인력의 근거지다. 이들 업체는 '창업 → 사업 확대 → 구조조정 → 퇴출'로 이어지는 기업의 생멸 주기가 극히 짧고, 그에 따라 인력이동도 거대한 파도를 따라오는 잔물결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잦은 인력이동, 문제는 없는가
이런 인력의 부초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강하다.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또 유능한 인재의 경우 더 나은 직장으로 스카웃될 기회가 많다는 점도 좋게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런 조사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측면을 고려해도, 직장인이면 누구나 다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처럼 보인다.
기업 측면에서 봐도 이런 현상은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근 IT잡피아란 채용 사이트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1천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55.4%는 경력 채용자에 대해 만족스러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스펙(경력)에 비해 실무능력이 떨어지고, 그러면서 과다한 연봉을 요구하며, 언제든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데다, 사내 다른 이들과의 동화도 어렵다는 이유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서 형성되는 종합적인 판단인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직원들은 "내(우리) 회사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회사는 "내(우리) 직원이다"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 장면4
16일 오후, 게임 업체 C사 사무실.
L과장은 품에 넣은 사직서를 안고 끙끙거리고 있다. C사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은 N사의 스카웃 제의를 수락키로 결정했는데, 선뜻 사표를 제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옮기면 직장 경력 7년 만에 5번째다. 특히 C사는 직전 직장의 CEO였던 M씨가 추천해준 곳. M씨는 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그동안 총애했던 L과장을 C사에 추천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 M이 다시 그를 부른 것이다.
사람을 따를 것인가, 직장을 따를 것인가, 일을 따를 것인가, 돈을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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